2016.09.14 여성스러움에 관하여

기록/문득 2017. 8. 21. 16:21




내가 20대 초반 때,
흔히 말하는 '여자들이 마시는 술'인 맥주나 과일 소주(당시엔 시판되던 과일소주는 없었다. 호프에서 제작한 과일소주가 전부였던 때)를 두고
'이건 술이 아니다. 나는 일반 소주만 마신다. 이게 진짜 술이다.' 라고 객기를 부렸던 이유가
여자도 이럴 수 있다. 여자도 남자같을 수 있다. 여자라고 소주를 못 마시는 건 아니다. 라는 걸 보여 주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였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여, 술로 남자한테 지는 것도 싫어해서 누가 더 잘마시나 보자. 했던 배틀도 여러번 있었다.
뭐 매번 진 것 같지만.

저녁 6시부터 다음날 아침 10시까지 마셨던 술이 자랑이었고,
남자들이 흔히 한다는 창가에 술병 줄 세우기가 뿌듯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가끔 하는 말인 '이미지가 쎄다.' 라는 말이 나에겐 칭찬이었다.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여성스러움' 이라는 건 찾아볼 수 없는게 나라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부어라 마셔라 객기 부렸던 때, 너무 무리했던 탓인지 지금은 소주를 멀리하게 됐지만..
여러 이유가 있는 이런 내 술 취향을 두고 '여성스럽다' 라고 말하는건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다.

어렸을 때 부터 천성이 남자라는 성별을 가진 사람들에게 지기 싫어했던 것 같은데..
(초등학교때 내 머리채를 잡으며 쪼잔하게 싸움을 걸어오던 남자아이에게 주먹으로 답한 적도 있다. 물론 이겼고)
나이 먹으며 사회로 나와 남, 여 사람대 사람으로 대치할 만한 상황이 술자리 밖에 없으니, 그렇게 객기를 부렸었나 싶다.
덕분에 몸만 망가졌지.

어렸을 때 가졌던 꿈들 중 하나가 여군이었다.
여군이 돼서 남자들 다 때려잡고 다니겠다고 그랬더랬다.
더 나아가 여자들만 사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고도 생각 했었다.
엄마가 나 가졌을 때 남자 친척들 한테 안좋은 꼴 많이 당했었다고 했는데 그 영향도 있었던 것 같고,
지금 생각해보면 가부장 시스템의 한국 문화가 그 꼬꼬마 때 부터 거부감이 들었던 것도 같다.

그냥 문득.
애인과 도수 낮은 음료수 같은 술에 대해 이야기 하다 나온 '여성스러운 술 취향' 이란 말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여성스럽고 남성스럽고, 심지어 개인의 입맛 차이인 술에서 까지 그런 말이라니..

여자다운건 뭐고, 남자다운건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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